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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랏슨의 일상/내가 가는 곳이 핫플

저질체력도 할수있다! 자전거로 제주 한바퀴 3) 2일차

2023.04.26 - [도랏슨의 일상/내가 가는 곳이 핫플] - 저질체력도 할수있다!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 2) 1일차

 

저질체력도 할수있다!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 2) 1일차

2023.04.24 - [도랏슨의 일상/내가 가는 곳이 핫플] - 저질체력도 할수있다!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 1) 준비 저질체력도 할수있다!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 1) 준비 봄을 맞이하여 저질체력이지만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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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의 2일 차 라이딩 :

해거름 마을공원 ~ 법환바당 인증센터

 

협재 해수욕장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바다 베스트 3 안에 들어가는 협재 해수욕장... 의 모습입니다. 밤 아니고 아침 10시입니다...

이렇게 음산한 날씨의 협재 해수욕장은 처음 봐서 너무나도 낯설었어요.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날 날씨는 뭔가 잘못되어 버렸더라고요.. 

 

이 다음날은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했기 때문에 미리 좀 달려둬야 한다는 생각에 둘째 날은 총 75km 정도 달리기로 계획을 잡고 서귀포 시내에 숙소까지 미리 예약해 버렸는데 아... 정말 오산이었습니다.

 

2일차 일정

 

이 계획의 가장 크게 잘못된 부분은 바로 바람을 체크하지 않은 것이었어요.

이 날은 초속 10m 이상의 강풍이 부는 날이었고, 방향은 가려는 방향과 정반대!

완벽한 역풍이었던걸 체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일 차의 코스 자체가 전체 코스 중 가장 난코스였어요.

송악산과 산방산쪽을 지나는 오르막이 제일 많았던 구간이었고 하필 또 너무 긴 구간을 계획했던 게 문제였던 거죠.

그렇게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은 하루종일 햇빛을 볼 수가 없어 쌀쌀했고 오후에만 잠깐 내린다던 비가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했어요.

바람소리가 귓가에 시끄러울 정도로 불어닥치기 시작하면서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돌풍이 끝도 없이 불어대니 평지인데도 오르막처럼 느껴질 정도로 페달 밟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바람을 말 그대로 뚫고 가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풍차가 아주 신명 나게 돌아가더라고요? 전기는 참 많이 생산됐을 것 같았던 하루...^^

 

뷰맛집 미쁜제과

1시가 다 되어가지만 바람의 저항으로 송악산 근처도 가지 못해서 너무 조급해지기 시작했어요.

밥 먹을 기운도 없고 밥맛도 없어서 그냥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그 와중에 뷰가 너무 예쁘더라고요.

유채꽃, 바다, 그리고 한옥느낌...  평소였다면 2시간은 죽치며 감성에 젖었겠지만 이날은 조급한 나머지 오래 지체할 수도 없었어요. 비는 점점 더 많이 올 예정이었고 바람도 점점 더 거세지기만 했으니까요.

 

자전거를 본 사람들이 이 날씨에 이걸 타고 온 것이냐며 걱정 반 의문 반을 표하였지만 슬픈 눈빛으로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람때문에 쓰러진 풀들

 

송악산을 오르는 길에 만난 말을 핑계로 잠시 쉬어갔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다보니 빗방울에 얼굴이 따가울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냥 달려도 힘들판에 진짜 너무하네 라는 말만 절로 나왔지만... 내가 자초한 재앙이니 어디에 화도 못내는 상황...

 

오르막길에서는 이제 아예 자전거를 탈 생각을 접고 끌고 올라갔어요.

괜히 용써봐야 역풍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지도 않고 힘만 들어서 남은 코스를 완주할 가능성이 희박해지기 때문이죠...

 

그렇게 반쯤 타고 반쯤 걸어 녹초가 된 상태로 송악산 인증센터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4시.

아직 30km를 더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바람도 난리 요동을 치고 있었어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만 한가득이었습니다. 정말 더 갈 자신이 없었어요. 바람만 없었더라도 그런 고민은 안 했을 텐데...

택시를 부르던 뭘하든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무념무상으로 다시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힘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겨우 찍은 두장의 풍경 사진

 

날이 거지 같아도 제주도는 여전히 예뻤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니 잠깐 천국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어요.

 

산방산 쪽 자전거길은 우리가 흔히 산방산 관광할때 오르던 그 도로를 타는 것이 아닌 그 뒤편 차도 옆으로 우회하여 달리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산방산 관광지를 보면서 지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안전문제때문인 듯해요.

 

여기서부터는 경치랄것도 딱히 없고 그냥 차도 옆에서 자전거와 물아일체가 되어 그냥 달렸습니다.

은은한 오르막이 계속됐어요.

바다옆이 아니어서인지 바람도 좀 줄어든 느낌이었고요.

 

하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이미 체력이 고갈되어 여전히 오르막은 거의 자전거를 끌고 갔어요.

이게 도보여행인지 자전거여행인지 분간이 안갈지경...!

 

 


 

그렇게 매우 더디게 가다가 거의 해가 질 무렵.

중문쯤에 이르러서 드디어 내리막의 연속이 펼쳐졌습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감격에 눈물이 날 지경이더라고요.

원래 내리막 무서워하는데 이땐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너무 반가웠고 거의 그냥 몸을 내맡겼어요. 

 

자전거 바퀴에 붙은 벚꽃들이 아주 예쁘네^^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여유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희망이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어찌나 시원하고 상쾌하던지!!

 

 

결국 그렇게 한참을 내달려 예상보다는 빨리, 오후 8시쯤 되어서 법환바당 인증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법환바당 인증센터는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어요! 밤이어서 바다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감격의 눈물이 빗물과 함께 바다로 흘러내려가는 듯한 느낌...ㅠㅠ

 

이 날 이 강풍과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오는 내내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극기훈련을 했던 날... 사서 고생한 날...

하지만 이 저질체력으로 비바람을 뚫고 75km를 달려 도착한 것만으로도 기적 같았던 하루예요!

그리고 지금도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하루입니다.